“자연이 낫게 해줄 거라 믿었다”
스티브 잡스는 말년에 여러 측면에서 세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기술, 철학, 디자인은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까지도 늘 화제가 됐다. 특히 그가 암 투병 중 선택했던 자연요법 중심의 치료 방식은 아직도 회자된다. 잡스는 2003년 췌장에서 신경내분비종양(PNET)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을 미루고 채식과 과일주스, 단식, 침술, 명상 등 대체요법에 의존했다. 당시 그가 했던 말은
“몸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단, 자연의 방식으로 도와줄 뿐이다.”
하지만 암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치료 가능한 단계에서 수술이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의료진의 평가가 뒤따랐다. 그가 선택했던 방식은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고, 암은 전이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암세포와 당분, 그 복잡한 관계
많은 사람들이 “당분이 암세포에 밥을 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비유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일정 부분 과학적인 맥락이 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기 위해 포도당을 과도하게 흡수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바르부르크 효과’라고 부른다.
잡스가 선택한 과일주스 식단은 일반적으로 건강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과일주스에는 생각보다 많은 당분이 포함되어 있다. 혈당을 급격히 올릴 수 있고, 이론적으로는 암세포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물론, 과일을 먹는다고 해서 곧장 암이 생기거나, 주스를 마신다고 암이 악화된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암 치료가 시급한 순간, 그것만으로 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고 다른 치료를 미루는 행위에 있다.
대체요법은 치료를 대신할 수 없다
대체요법은 때때로 위안을 줄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 방법을 제쳐두고 대체요법에만 기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체요법만을 선택한 암 환자는 표준치료를 받은 환자보다 생존율이 크게 낮았다. 특히 유방암, 폐암, 대장암 등에서 이 차이는 두드러졌으며, 췌장암도 예외가 아니었다. 치료의 골든타임은 한 번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
잡스의 철학과 현실 사이
잡스는 평생 스스로의 철학과 감각을 믿어왔던 사람이다. 직관을 따랐고, 기존의 틀을 부수며 전 세계를 바꿔 놓았다. 그런 그가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도 ‘자연치유’라는 철학을 고수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질병 앞에서는 때로 철학보다 의학이, 직관보다 과학이 먼저여야 한다.
자연요법이든 대체요법이든, 그것이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기능할 때는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치료’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 치료 시기를 놓치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잡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
잡스의 사례는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암과 식이요법, 대체의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싶을 수 있지만, 가장 먼저 할 일은 검증된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건강한 식단, 심리적 안정, 삶의 질 개선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생명을 다투는 치료 앞에서는 검증된 의학적 접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전에는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 인터넷 정보나 유명인의 사례만을 근거로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마무리하며
스티브 잡스는 기술로 세상을 바꾼 천재였지만, 치료의 선택에서는 실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 사례로부터 현실적인 교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암 치료는 속도와 타이밍의 싸움이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오늘도 의학은 진화하고 있고, 우리는 그 과학을 신뢰할 이유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