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밤의 터널”
미소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이젠 좀 커졌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곧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미소는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앞섰다. 영주시에서 20리나 떨어져 있는 기찻길 옆 동네 도래에서 성장한 미소는 익숙할 만한데도 터널 통과는 언제나 두려움의 순간이었다.
미소가 서 있는 터널 앞 철길은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는 곳이었다. 그 터널은 깊고 어둡게 입을 벌리고 있었고, 미소는 그 터널을 보면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이 돋곤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한국전쟁 때 저 터널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죽고 했다곤 했다. 그래서 가끔씩 목이 없는 또는 얼굴에 상처입은 유령들이 나타난다곤 하는 곳이다. 피하고 싶은 곳이지만 집으로 가자면 저 곳을 통과해야만 한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자,’ 미소는 속으로 다짐하며 작은 돌멩이를 발끝으로 톡톡 차면서 터널을 향해 걸어갔다.
초여름 밤의 공기는 부드럽지만, 터널을 통과해 하는 상황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소는 한 손에는 막대기를 세게 잡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터널의 어두운 입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어른들이 말했던 유령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기찻길 위에서 혼자 걸으면서도 귀를 기울이면 아주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미소는 작은 숨소리조차 조용히 가라앉히며 터널 앞에 섰다.
문득 발밑에서 떨리는 소리가 느껴졌다. 미소는 곧 다가올 기차를 떠올리며 긴장했다. “어떡하지?” 순간 그의 마음속엔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버지는 터널 속에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막대기를 벽에 대고 달리라고 했다. “터널 안에는 언제나 작은 대피소가 있게 마련이야. 그 대피소에서 터널 벽 쪽에 바짝 붙어서 손으로 귀를 막고 있어. 무서워도 잠깐이야.”
미소는 터널 안으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 훅 끼쳐 오고, 미소는 두 손으로 막대기를 벽에 대었다. 그러자 멀리서 들려오던 기차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터널 안을 울렸다. 기차가 터널을 가득 채우며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는 순간, 미소는 빠르게 뛰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벽에 댄 막대기가 안쪽으로 쑤욱 들어가는 대피소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차가 터널 안을 지나며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그가 그동안 상상해왔던 것보다 훨씬 컸고, 진동은 그의 작은 몸 전체를 뒤흔들었다. 대피소 벽에 기대어 있던 미소는 그 커다란 소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로 숨을 죽였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을 버티며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멀어지고, 터널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미소는 조심스럽게 손을 귀에서 떼고 눈을 떴다. 별빛이 터널 밖으로 비쳐 들어와 마치 어둠 속을 밝혀주는 것 같았다. 그 고요 속에서 미소는 자신이 조금 더 성장한 것을 느꼈다.
두려움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지만, 그 터널을 통과하며 얻은 용기는 그의 마음에 작지만 깊이 자리 잡았다. 그날 밤 미소는 알았다. 두려움이 닥쳐올 때 조금씩 용기를 내며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스스로 더 강해진다는 것을.